• 로그인
  • 회원가입
  • 사이트맵
'주를 바라보고 인내하자'(12/2,1-4부)

주를 바라보고 인내하자!”, 히브리서(23) 12:1-3

 

오늘 읽으신 히브리서 12에 오면 믿음을 실천한 사람들에 대해 말씀이 일단 마무리 됩니다. 그리고 주어지는 권면이 있습니다. 어떤 면에서는 선언이기도 합니다. 본문 1절부터 2절 전반부의 말씀입니다.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오늘 본문 전반부의 권고입니다. 이제 믿음으로 살아 승리한 사람들의 무수한 증거를 분명히 확인하였으니 이제는 우리 자신들에게 주어진 삶의 과제를(본문에서는 경주에 비유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도 주신 믿음을 가지고 / 곁눈질하지 말고 / 언젠가 떠날 세상에 기반을 쌓으려 하지 말고 / 그 무엇에도 묶이지도 말고 / 시험과 유혹을 참아내며 / 생의 경주를 거뜬히 감당해 나가자는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믿음으로 하는 경주에서 승리하기 위해서 확정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무엇입니까? ! 본문의 선언처럼,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여기서 는 희랍어 아르케고스의 번역으로 창시자라는 의미입니다. 주님은 우리 믿음의 창설자시라는 말입니다. 주님이 계시기에 우리의 믿음이 있습니다.

 

이 믿음은 우리가 노력해서 억지로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위해 베푸신 구속의 은혜, 우리의 죄값을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대신 치루시고 우리를 구원해 아버지 하나님의 자녀삼아 주신 은혜와 사랑에 대한 자연스러운 반응입니다. 그래서 믿음의 주인은 가 아니고 예수님이신 것입니다. 그래서 성도가 믿음으로 달리는 경주에 승리하기 위해서는 믿음의 창시자되시는 주님을 집중적으로 바라보아야 합니다.

 

(구체적으로 주님만을 바라보는 삶은 먼저)

@ 주님이 주신 <말씀>에 집중하여 그 기준으로 사는 삶입니다.

 

주님은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로고스, 말씀이시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1:1-3,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그래서 성도는 주님의 말씀을 푯대로 삼고, 결승점으로 삼고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 교회와 성도들이 <말씀묵상, Q.T와 기도의 집중력을 가지고자 하는 분명한 이유>입니다. 집중력은 무서운 힘을 발휘합니다. 다시 한번 <말씀과 기도의 집중력>을 갖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이끌어 내시고 이제 여호수아를 통해 약속하신 땅을 밟게 하시기 전 주신 명령이 무엇입니까? 말씀의 집중력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여호수아 1:7-9, “오직 너는 마음을 강하게 하고 극히 담대히 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한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가운데 기록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라 네가 형통하리라 내가 네게 명한 것이 아니냐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두려워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하시니라 가나안 정복전쟁 승리의 비결입니다. 가나안은 무기로 정복한 땅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차지한 땅입니다.

 

늘 말씀을 펴고 주님의 음성듣기를 사모해야 합니다. 욥기 37:2, “하나님의 음성 곧 그 입에서 나오는 소리를 들으라 들으라

 

그 혼탁한 시대에 블레셋의 위협으로부터 이스라엘을 구한 사무엘의 출발점이 어디 입니까? 바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순간입니다. 사무엘상 3:10, “여호와께서 임하여 서서 전과 같이 사무엘아 사무엘아 부르시는지라 사무엘이 가로되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 말씀의 인도를 받는 순간입니다. 오늘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시대가 혼탁해서 다 길위에서 길을 잃고 비틀거리지만 말씀의 집중력을 가지고 주의 음성을 듣는 성도는 바른 길을 걸어갈 수가 있습니다. 말씀은 우리 발의 등이요, 길의 빛이기 때문입니다. 시편 119:105, “주님의 말씀은 내 앞길 비춰 주시는 등불 내 갈길 밝혀 줍니다.”(현대어성경) 바벨론 포로시대, 에스겔의 소명의 시작도 하나님의 말씀에서 시작했습니다. 에스겔 1:3, “갈대아 땅 그발 강가에서 여호와의 말씀이 부시의 아들 제사장 나 에스겔에게 특별히 임하고 여호와의 권능이 내 위에 있으니라

 

(이제)

@ 주님만을 바라보기로 확정한 성도는 끝까지 인내해야 합니다.

 

최후 승리를 얻기 위해서는 인내해야 합니다. 우리를 구원하신 주님의 태도입니다. 본문 2절 후반부에서 3까지의 말씀입니다.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치 않기 위하여 죄인들의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자를 생각하라

 

언제 인내가 필요합니까? 힘들때입니다. 그런데 너무 힘들면 참아내는 일이 쉽지 않습니다.

 

오랜 전 그리스에서 아테네클래식마라톤대회가 열린 적이 있습니다. 원조 마라톤 코스라고 합니다. 탄자니아의 제베다요 바요 라는 선수도 자기기록보다 88초나 뒤졌다고 합니다. 그 만큼 힘든 코스를 뛰는데 여기에 마의 코스가 있다고 합니다. 20-32km지점까지 12km가 계속 오르막이라고 합니다. 9월에 경기가 열렸는데 35-37도의 더위에 습도가 70%였다고 합니다. 여기 이르면 죽고싶어 진답니다. 자기 힘의 한계상황에 도달하는 것입니다. 이 때 이겨내는 길은 결승점에서 받을 면류관을 생각하고 승리자에게 주어지는 환호를 생각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상금입니다.당시  ING에서 백만불을 걸었습니다. 그래서 어려운 나라 사람들이 주로 우승함하는 것입니다. 이 마의 코스만 이겨내면 결승점까지는 거뜬이 갈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성도가 자기 힘의 한계점에서 인내하기 위해서는 십자가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보통 힘들다고 생각하는 모든 경우가 십자가에 드러나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우리를 위하여 받으신 육체적인 고통-채찍질, 가시면류관, 창으로 찌림 / 수치스러움-옷 벗기고, 침 뱉음 받고, 조롱당함 / 피곤과 낙심-끝없는 구원사역에 지친 모습 / 제자들의 배반 / 무리들의 거역...주님은 이 상상하기 힘든 십자가의 고통을 참으셨습니다. 이사야 53:5-6,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며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그 앞에 있는, 그 고통을 초월하는 즐거움,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목적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시고 부끄러움을 개의치 않으셨다고 했습니다. 개의치 않으셨다는 말씀은 대항하지 않으셨다는 의미입니다. 소중한 교훈입니다. 사실 인내의 진정한 의미는 고통과 싸우는 것이 아니라 받아들이고 견디어내고 pass시키는 것입니다. 주님이 십자가를 이기신 것은 끝까지 인내하심으로 이기신 것입니다.

 

토마스 칼 라일, ‘참된 영광을 이루는 것은 믿음의 경주를 완전히 마칠 때까지 지속하는 인내다.’

 

세뮤엘 존슨, ‘위대한 업적은 힘이 아니라, 인내에 의해 성취된다.’

 

찰스 스펄젼, ‘달팽이는 인내로 방주에 도달했다.’

 

결국 인내는 자신과의 싸움입니다. 감사한 것은 우리는 이 싸움에서 이기신 주님을 바라봄으로 인내의 큰 힘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십자가를 보면 위로가 되고 용기가 나는 이유입니다. 누군가가 겪었다면 우리도 겪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받는 은혜가 십자가의 은혜인 이유입니다. 찬송가 151장 가사의 의미입니다. 만왕의 왕 내 주께서 왜 고초당했나 이 벌레같은 날 위해 그 보혈흘렸네 십자가 십자가 내가 처음 볼때에 나의 맘에 큰 고통 사라져 오늘 믿고서 내눈 밝았네 참 내 기쁨 영원하도다

 

결국 주님만 바라보는 삶은 말씀의 집중력을 가지고 기도로 주의 음성을 들으면서 길을 찾는 삶입니다. 인생에 오는 모든 어려움을 주님의 십자가를 바라보며 참아내고 이겨내는 삶입니다. 라 퐁텐이란 분은 인내는 모든 문을 연다고 했습니다. 끝까지 인내하셔서 인생의 모든 문을 여시고 천성의 문까지 들어가는 존귀한 종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개인정보취급방침 이메일집단수집거부
주소 : 08807 서울특별시 관악구 남현1가길 28(남현동) | TEL : 583-4146~9 | FAX : 583-9624
Copyright ⓒ 남성교회 All rights reseved. Provided By 교회사랑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