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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양들을 먹이라'(5/17,1-3부)

나의 양들을 먹이라”, 요한복음 21:15-17

 

지난 15일이 스승의 날이었습니다. 아직도 대부분의 학교가 개학도 못하고 있는 상태에서 일선 학교 선생님들의 수고가 많은데도 기념할 수 없어 사제지간이나 / 교사. 부모님들 피차간에 아쉬움이 많을 줄로 압니다. 이 시간, 교직에 계신 성도님들께 감사드리고 하나님의 위로와 격려해 주심의 은혜가 있기를 기도드립니다. 더불어, 믿음의 다음세대를 세우기 위해 헌신하시는 우리 교회학교 교사들과 어린이집 교사들께도 감사를 드립니다.

 

오늘은 우리 교회학교가 오랜 기간 문을 열지 못하고 있는 시점에서 교회학교 교사뿐만 아니라 우리 온 성도들이 교회교육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코로나이후에도 교회학교를 다시 세워나가기 위해 <교사가 된 마음으로> 그 사명에 대해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더불어서, 지난 주일부터 시작된 <코로나19로 인한 신앙의 위기를 극복하는 교회와 가정의 자녀교육>을 주제로 한 주일 저녁 특별예배시간에도 많이 오셔서 함께 은혜를 나눌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예배당에 못나오시는 분들을 위해 영상을 보내드리고 있으니 꼭 보시고 함께 비전을 나눌 수 있기를 바랍니다.

 

(먼저)

@ 가정에서나 교회에서나 자녀 교육을 위해, 다음세대를 세우기 위해서는 믿음의 부모, 선진 세대들이 <그리스도의 사랑안에 있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은 부활하신 주님이 사랑하던 제자 베드로에게 나타나 사명을 주시는 장면을 상세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주님이 떠나시고 난 후 대신 복음전파의 사명을 감당할 제자를 세우는 장면입니다. 주님께서 주님이후의 세대를 준비하고 계신 것입니다. 주목할 것은 주님은 베드로에게 사명을 주실 때에 그저 말씀으로만 주신것이 아니라 그를 대하는 주님의 태도를 통해 먼저 감동을 주십니다.

 

잘 아시는 것 처럼, 주님이 부활하시고 베드로앞에 나타나셨을 때에 베드로의 모습은 심히 부끄러운 모습이었습니다. 부끄러운 정도가 아니라 참으로 한심하고 주님 입장에서는 분노할 수도 있는 모습이었습니다. 주님이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 그의 연약함을 아시고 닭이 울기전 네가 나를 세 번 부인하리라고 예언하셨는데도 절대 그럴 일이 없다고 장담하다가 주님을 저주까지 했던 베드로입니다. 마태복음 26:74, “저가 저주하며 맹세하여 가로되 내가 그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 하니 닭이 곧 울더라 또 그 후에도 회개하고 제자의 길을 가려하지 않고 주님의 십자가 죽음후 다른 제자들에게까지 낙심을 주며 고기 잡으러 갔다가 밤새 아무것도 잡지 못한 베드로입니다.

 

그러나 바로 그 밤, 베드로앞에 나타나신 주님은 아무것도 묻지 않으셨습니다. 주님의 베드로의 필요를 먼저 채워주셨습니다.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져라고 알려주셔서 고기가 많아 그물을 들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고기를 주셨습니다.(153마리) 그리고 제자들과 함께 잡은 생선을 잡수십니다.

 

교회교육을 통해 다음세대를 세워나가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교회학교 교사뿐만 아니라 모든 성도들이 무엇보다 먼저 베드로를 대하는 주님의 태도를, 주님의 마음을 배울 수 있어야 합니다.

 

주님은 베드로의 과거를 묻지 않으십니다. 그의 실수를 탓하지 않으십니다. 주님께서 베드로를 다시 만난 그 순간, 베드로는 고기를 잡지 못해 실망해 있었고 이전 자기 잘못으로 인해 심한 죄책감과 무력증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에게 당장 필요한 것은 뭘 좀 먹고 마음에 여유를 갖고 스스로 자신의 뒤를 돌아보는 일이었습니다. 주님은 베드로의 그 마음을 아시는 분 이셨습니다. 베드로를 그저 그런 베드로로 보아주셨습니다.

 

교회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녀들에 대한 태도입니다. 어떤 편견도 가져서는 않됩니다. 아이들을 아이들 자체로 소중이 여겨야 합니다. 주님은 베드로에게 사명을 맡기시기 전 먼저 물어보십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본문에 보면 15, 16, 17에 걸쳐 반복되고 있습니다. 세 번은 완전수일 수 있습니다. 확실한 다짐을 받으시려는 주님의 의도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17에 보면 베드로는 순간 근심했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근심을 통해 확신을 갖게 됩니다. 그래서 완전한 고백을 하게 됩니다. 세 번째 가라사대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주께서 세 번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므로 베드로가 근심하여 가로되 주여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을 주께서 아시나이다 사실, 베드로 자신이 주님의 사랑을 안다는 확신이 전제되어 있습니다.

 

우리 자녀들이, 다음세대가 우리 부모세대가 자신을 사랑하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 때에 자녀들도 부모세대를 사랑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교회교육의 가장 소중한 재료는 부모와 교사들이 체험한 그리스도의 사랑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를 향한 사랑의 고백입니다.

 

시편 18:1, “나의 힘이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이제),

@ 주님의 사랑을 체험하고 주님을 사랑하는 우리 부모와 교회학교 교사들이 먼저 실천해야 할 사랑은 관심과 용납입니다.

 

#. 관심이 사랑이라고 할 때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합니까? 기억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구원의 축복을 누리게 된 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기억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이사야 44:21, “야곱아 이스라엘아 이 일를 기억하라 너는 내 종이니라 내가 너를 지었으니 너는 내 종이니라 이스라엘아 <너는 나의 잊음이 되지 아니하리라>”

 

우리가 섬기는 아이들의 이름을 늘 기억해야 합니다. 이름을 기억한다는 것은 아이들을 늘 마음에 품고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한 순간도 우리 자녀들이 우리 마음 밖에 있어서는 않됩니다. 가정에서나 교회에서나 자녀들이 무시당해서는 않됩니다. 소외되어서는 않됩니다. 기억해 주고 인정해 주어야 합니다.(영상을 보내고, 선물을 보내고...계속 소통하는 이유)

 

그러므로, 우리 부모들과 믿음의 선진들, 교사들은 매일 자녀들의 이름을 부르며 다음세대를 위해 기도할 수 있어야 합니다. 기도하면서 아이들의 형편을 헤아려 보아야 합니다. 얼굴에 그늘은 없었는지...자신감이 떨어져 있는지..그리고 먼저 기도로 자녀들을 세워줄 수 있어야 합니다. 잠언 27:23, “네 양 떼의 형편을 부지런히 살피며 네 소 떼에 마음을 두라 우리 믿음의 부모들과 교사들의 기억과 기도는 우리 자녀들에게 큰 힘이 됩니다. 기억은 관심에서 나오고 관심은 사랑의 실천을 가능케 합니다.

 

(더불어)

#. 사랑은 구체적으로 용납입니다.

부모와 교사는 아이들의 모든 것을 용납할 수 있어야 합니다. 어머니들은 아이를 키울 때에 배설물까지도 더럽게 여기지 않습니다. 왜 입니까?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흔히 사랑만 가지고는 않되고 책망이 필요하다고 하지만 사실 용납없는 책망은 관계의 단절로 이어집니다. 진정한 충고는 사랑할 때에만 가능합니다.’는 말의 의미입니다. 사랑하고 인정해 주고 용납해줌이 전제되어야 책망할 수 있습니다. 에베소서 4:32, “서로 인자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예수님은 그 무엇보다 먼저 용납하셨습니다. 마가의 부자 관원에 대한 증언이 무엇입니까? 예수께서 그를 보시고 사랑하셨다는 것입니다. 마가복음 10:21, “예수께서 <그를 보시고 사랑하사 이르시되> 네게 아직도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가서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또 어린아이의 접근을 통제하려는 제자들에게 주님은 어린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막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마가복음 10:13-14, “사람들이 예수께서 만져 주심을 바라고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오매 제자들이 꾸짖거늘 예수께서 보시고 노하시어 이르시되 어린 아이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 사랑으로 대하는 태도는 결국은 용납입니다. 받아줌입니다. 신앙 교육의 시작입니다.

 

용서와 용납은 다음 기회를 주지만 정죄와 거부는 그것으로 파국에 이릅니다.’ 모든 인간관계에 적용되는 법칙입니다. 용납은 서로에게 회복의 기회를 줍니다. <관심과 용납의 사랑>으로 우리 자녀들에게 한 없는 기회를 줄 수 있는 부모와 교사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제)

@ 우리 부모와 교회학교 교사들이 사랑의 태도를 가지고 주님이 맡겨주신 양과 같은 우리 자녀들을 부지런히 먹여야 합니다.

 

베드로의 사랑을 확인한 주님의 당부입니다. 나의 어린 양을 먹이라’, ‘내 양을 치라’, ‘내 양을 먹이라 아이를 사랑하는 부모는 어떻게 든지 아이를 먹이려 합니다.

 

교회학교가 문을 닫고 있지만 부모와 교회학교 교사들이 예배와 말씀을 배우는 일, 그리고 무엇보다 기도에 더 집중력을 갖기를 바랍니다. 사무엘상 12:23, “나는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여호와 앞에 결단코 범치 아니하고 선하고 의로운 도로 너희를 가르칠 것인즉모든 성도들이 교사된 마음으로 남성교회 교회학교가 다음세대를 준비하고 세워나갈 수 있도록 우리 자녀들을 위해 기도와 후원을 아낌없이 보내주시기를 바랍니다.

 

지금은 코로나로 인해 교회학교 문이 닫혀 있지만 역설적으로 지금이 코로나19 이후를 준비하는 기회입니다. 함께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국민일보 칼럼, ‘한국교회 사무엘시대를 열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사태는 한국교회의 절호의 기회가 될 수 있다. 이 비상한 상황으로 인해 한국교회는 사무엘의 세대가 주역이 되는 새로운 교회운동을 전개해 나갈 환경이 조성될 수 있다. 지금의 기회를 놓치면 않된다...’ ‘...사무엘은 저절로 태어나지 않는다. 사무엘의 탄생은 한나의 마음을 쏟아붓는 절실한 기도로 이루어졌다.’

 

하나님은 구약 영적 암흑기에도 사무엘을 불러 이스라엘을 세워나가셨습니다. 우리 믿음의 세대가 그 부르심을 듣지 못하는 엘리제사장이 되어서는 않됩니다. 오직 주님의 얼굴을 구하며 말씀묵상을 통해 그 분의 음성을 듣기를 원하며 그 말씀으로 이 상황을 이겨내고 한나와 같은 기도로 사무엘과 같은 자녀를 세워 함께 하나님앞에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사무엘상 3:10-11, “사무엘이 이르되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 하니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이스라엘 중에 한 일을 행하리니 그것을 듣는 자마다 두 귀가 울리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