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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봉인에 담긴 심판의 의미'(10/11,1-3부)

일곱봉인에 담긴 심판의 의미”, 요한계시록(19) 6:1-11

 

이제, 마침내 두루마리의 봉인이 떼어지면서 심판의 말씀이 공개됩니다. 요한계시록 전체에서 보면 3장까지 당시 소아시아 일곱교회에 주어지는 말씀의 기록이고 4장에서 18장까지 장차 되어질 일에 속한 부분입니다. 4-5장은 몇 주간 나눈 것처럼, 심판이 행해질 천상의 모습과 어린양에 대한 기록입니다. 그 나머지 내용은 소위 37중재앙과 7년 대환난에 관한 것이고 그 중 12-14장에는 7년 대환난중에 교회가 받을 고난에 대해 삽입기사가 들어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이 포함된 6:1-8:637중 재앙중 첫 번째로 일곱인의 재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오늘부터 두 주간에 걸쳐 일곱인의 재앙중 첫 번째에서 다섯 번째 인의 재앙을 가지고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먼저, 구체적으로 일곱인 재앙에 대한 내용을 나누기 전에)

@ 일곱 봉인에 담긴 재앙의 심판은 <순교자들에 대한 보응의 성격>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첫 번째에서 네번 째 인에 담긴 심판의 내용이 공개되다가 본문 9에 보면 다섯 번째 인을 떼면서 하나님의 말씀과 그들이 가진 증거로 말미암아 죽임을 당한 영혼들의 탄원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9-10입니다. 다섯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보니 하나님의 말씀과 그들이 가진 증거로 말미암아 죽임을 당한 영혼들이 제단 아래에 있어 큰 소리로 불러 이르되 거룩하고 참되신 대주재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심판하여 우리 피를 갚아 주지 아니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려 하나이까 하니...”

 

실제로 다섯 번째 인에는 구체적인 재앙의 내용이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결국 일곱인 재앙 전체에 <순교자의 탄원에 대한 심판>의 의미가 있음을 시사해 주는 것입니다.

 

더불어 순교자들의 탄원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본문 11입니다. 각각 그들에게 흰 두루마기를 주시며 이르시되 아직 잠시 동안 쉬되 그들의 동무 종들과 형제들도 자기처럼 죽임을 당하여 그 수가 차기까지 하라 하시더라

 

(먼저, 본문에서 순교자들에게 주어진)

1) 흰 두루마기는 칭의의 상징이기도 하지만 여기서는 승리를 상징합니다.

 

피흘려 죽으신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가 천상의 모습에서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손에서 봉인된 말씀을 떼는 승리자로 증거된 것처럼, 피흘려 순교한 성도들이 흰 옷을 받는 것은 승리자가 된 것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참고) 대표적인 예로 스데반이 지상에서는 무자비하게 돌에 맞아 피흘리며 순교했지만 천상에서는 믿음의 승리자가 되어 흰 옷을 받아 입었음은 분명합니다.

 

이 지상 삶에서 어떤 핍박과 유혹이 있어도 억울함과 답답함이 있어도 승리자에게 주어지는 흰 옷을 받는 순간까지 믿음을 버려서는 않된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순교자의 피묻은 옷은 물론 주님을 섬기다가 땀흘린 옷, 억울한 일로 훼손된 모든 옷을, 그 삶을 천상에서는 흰 옷으로 갈아입혀 주심을 믿고 승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다음으로, 본문을 보면)

2) 순교자들에게 흰 두루마리가 주어지는 동시에 잠시 쉬라는 명령이 주어집니다.

 

잠시 쉬라는 희랍어 원어로 보면 소생시키다’, ‘회복시키다’, ‘원기를 회복시키다, 그리고 말씀 그대로 쉬게 하다라는 의미입니다. ‘잠시는 짧은 시간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베드로후서 3:8,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는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악에 대한 철저한 심판이 이루어질 때까지 순교자에게 주어지는 안식의 기간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 본문 말씀은 나중에 다시 나누겠지만 계시록 14:13의 말씀을 연상케 합니다. 또 내가 들으니 하늘에서 음성이 나서 이르되 기록하라 지금 이후로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시매 성령이 이르시되 그러하다 그들이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 이는 그들의 행한 일이 따름이라 하시더라

 

믿음을 지킨 성도들에게 마지막 때는 재앙의 심판이 아니라 안식의 때가 주어짐을 알려줍니다. 그러므로 이 지상 삶에서도 믿음의 삶을 살다가 지칠 때 마다 모든 판단은 주께 맡기고 주님안에서 을 누릴 수 있어야 합니다. 마태복음 11:28,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매 주일, 매일의 예배를 통해 이 안식의 은혜를 체험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유진 피터슨, ‘안식하라는 명령에 순종하는 것은 지루한 일이 아니다. 약속을 기대하는 희망찬 기다림이다.’

찰스 스윈돌, ‘시련이 닥칠 때 신실하신 하나님을 확신하고 그분 안에서 안식하라.’, 조이 도우슨, ‘하나님의 자녀는 인생의 모든 폭풍 속에서도 안식을 누리며 완전한 사랑으로 보호 받는다.’

 

(더하여서 본문 말씀은)

3)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이 완전히 이루어질 때까지 성도에게 인내의 기간이 필요한 것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아직 잠시 동안 쉬되 그들의 동무 종들과 형제들도 자기처럼 죽임을 당하여 그 수가 차기까지 하라 하시더라

 

는 특정한 산술적인 수와 연결시켜서는 않됩니다. 주님 다시 오셔서 심판하실 때까지 얼마나 많은 성도들이 순교나 순교와 같은 믿음의 삶을 살다가 가겠습니다.

 

이 말씀의 본 뜻은 역설적으로 순교자의 탄원에 대한 응답의 때가 언젠간 온다는 선언입니다. 동시에 악이 영원할 것 같아도 끝날이 온다는 것입니다. 잠언 24:19-20, “너는 행악자들로 말미암아 분을 품지 말며 악인의 형통함을 부러워하지 말라 대저 행악자는 장래가 없겠고 악인의 등불은 꺼지리라

 

이 땅에서도 인생에 끊임없는 고난과 역경, 믿음의 시련이 오지만 반드시 끝날이 옵니다. 그 때까지 인내해야 합니다.

 

칼 라일, ‘참된 영광을 이루는 것은 믿음의 경주를 완전히 마칠 때까지 지속하는 인내다.’

월터 스콧, ‘주님의 보좌 앞으로 성실하게 나가는 것은 고통 중에 인내의 교훈을 배우는 가장 훌륭한 방법이다.’

 

성도의 인내는 곧 믿음을 지키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1:5-7, “너희는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받았느니라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으로 말미암아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는도다 너희 믿음의 확실함은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할 것이니라 아멘!

 

일곱봉인에 담긴 심판은 믿음을 지켜 산 자들의 억을함을 풀어주시는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입니다. 로마서 12:19-21,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게 하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선으로 악을 이기기 위해서 그리스도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최후심판을 믿어야 합니다. 계시록 말씀을 주신 분명한 이유입니다. 그 날이 올때까지 심판의 주권을 가지신 주님앞에 탄원할 수 있어야 합니다. 누가복음 18:7-8,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그들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

 

하나님의 최후심판을 믿는 것은 부조리한 세상과 사람앞에서 끝까지 자신의 믿음을 지킬 수 있는 힘입니다. 이 믿음을 가지고 승리한 자에게 주시는 흰옷을 입을 때까지 / 주 안에서 안식하며 / 주님께 부르짖으며 인내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