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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8월 4일(주일) 말씀요약 <삶을 대하는 태도의 중요성>

지난주일 말씀(8.4)

<삶을 대하는 태도의 중요성>

창세기 40:6-7, 골로새서 3:22-4:1

 

왜 똑같이 노력해도 다른 결과가 나올까?” 2017년에 출간된 <Get Smart>라는 책에서 브라이언 트레이시는 같은 노력을 기울인다 하여도 노력 앞에 전제되는 생각과 태도로 인해 전혀 다른 결과가 도출될 수 있음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개개인이 갖는 능력의 차이, 개개인이 기울이는 노력의 절대적인 양의 차이라기보다는 그 시간, 그 일을 대하는 생각과 태도의 차이로 인해 다른 결과가 나온다는 것입니다. 그 시간과 일을 대하는 생각과 태도가 다르다 보니 겉으로 드러나지는 행동이 달라지고, 행동이 달라지니 결과도 다르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영적인 생활에서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하나님의 임재가 우리들의 삶에 간절히 임하기를 소망하고, 삶의 변화를 간절히 갈망한다고는 하지만 정작 우리들의 삶에 얼마나 간절한 기도와 말씀 묵상의 시간이 있는지, 하나님과 함께 하기 위해 성령 하나님께서 주시는 내적인 음석에 귀를 기울이는 실재적인 시간이 우리들의 삶에 얼마나 있는지 되돌아볼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살아간다고 하면서 기도하지 않고, 하나님의 능력을 구한다고 하면서 말씀을 묵상하지 않고, 삶의 변화를 갈망한다고 하면서 예배의 자리를 가까이하지 않는 것은 우리들의 모순된 삶의 모습이며, 그 삶에는 어떠한 변화도 능력도 경험될 수 없음을 우리는 인정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오늘 골로새서에서 사도바울은 로마시대 교회 공동체 내에서 노예와 그의 주인들과의 관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 당시 노예는 철저하게 주인에 의해 삶이 규정됐습니다. 주인의 말이 곧 법이요, 심판이요, 정의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노예는 저절로 주인의 말에 순종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그들을 향해 사도바울은 자신의 상전(주인)의 모든 일에 순종하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너무나 잔인한 말이 아닐 수 없습니다. 왜 이렇게까지 사도바울은 이야기하는 것일까요?

사도바울이 이렇게까지 이야기하는 이유는 이것이 하나님께서 시대와 역사를 이끌어 가시는 방식이기 때문이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고 모든 권위를 하나님 아래에 두었습니다. 그리고 저와 여러분은 그 하나님의 권위 아래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오늘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환경과 관계 속에서 주어지는 권위는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의 삶을 이끌어 가시는 방법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하나님의 권위 아래에서 보호받고 있으며 은혜와 축복을 동시에 경험하고 있는 것입니다. 때로는 그 권위 아래에 놓여있는 우리의 상황이 이해되지 않아도 때로는 불합리하게 느껴진다 하더라도 벗어날 수 없는 것은 그 권위를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의 삶을 이끌어가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사실을 꼭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현재 자신의 삶의 권위(직장에서의 어려움, 진로에 대한 고민, 인간관계 등)가 하나님의 권위 아래 있음을 믿는 순종에 대해 사도바울은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순종이 있어야 우리의 삶의 태도를 코람데오(Coram Deo)로 바꾸어 낼 수 있습니다.(창세기 40:6-7, 요셉의 삶 참조) 모슨 순간, 모든 상황 속에서 예수님처럼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권위를 인정하는 순종을 통해 우리는 우리의 삶을 대하는 태도를 코람데오(Coram Deo)로 바꾸어 낼 수 있고, 그 코람데오(Coram Deo)의 삶을 통해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를 이루어내는 삶의 결과를 얻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로마제국에서 기독교인은 전체 인구에 9%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4세기 로마제국의 국교가 기독교로 제정되는 놀라운 기적과도 같은 일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이러한 일이 가능했을까? 그것은 바로 하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의 삶의 태도 때문이었습니다. 같은 노예라도 살아가는 삶의 모양이 다르고, 같은 상전이라도 노예를 대하는 태도가 달랐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모습을 세상의 많은 사람들, 로마의 사람들은 주목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권위를 인정하며, 자신에게 주어진 삶의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노예는 상전에게, 상전은 노예에게 주께 대한 삶의 모습, 그리고 자신의 삶을 인내로 견디고 또 견디어 세상의 많은 사람들에게 거룩한 영향력을 드러내었던 것입니다. 세상의 사람들, 로마의 사람들은 이런 기독교인들에게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 크리스천이라는 닉네임을 지어주기도 하였습니다.

 

여러분, 오늘 여러분은 어떠한 권위 아래 놓여있으십니까? 어떠한 관계로 인해 힘들고 어려움을 겪고 계십니까? 하나님께서는 오늘 우리들이 처해있는 권위를 통하여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어 가시는 분임을 꼭 믿으시고, 오늘의 삶을 잘 견뎌 나아가기를 축복합니다. 욥의 고백입니다. 욥기 2310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

하나님께서 이 시대와 역사 가운데 정금과 같이 쓰시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다 되시기를 간절히 축복합니다.

 

Q) 오늘 내가 받아들여야 하는(순종해야 하는) 하나님의 권위는 무엇입니까?

Q)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그 권위를 통해 나의 어떤 부분을 단련하시는 것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