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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7월 7일(주일) 말씀요약 <거룩한 나그네의 삶>

거룩한 나그네의 삶”, 베드로전서(4) 1:13-25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나그네입니다. 그러나 정처없이 떠다니며 막 사는 나그네가 아니라 천국과 영생의 산소망을 가지고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을 따라 살아가는 거룩한 나그네입니다. 이 땅의 순례자들입니다. 본문 17순례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권고의 말씀이 있습니다. 외모로 보시지 않고 각 사람의 행위대로 판단하시는 자를 너희가 아버지라 부른즉 너희의 나그네로 있을 때를 두려움으로 지내라

 

오늘 본문에 이 말씀을 따라 사는 거룩한 나그네의 모습이 나타나 있습니다. 이 말씀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먼저)

@ 영적긴장감을 풀지 않는 모습입니다.

 

세상 육신의 삶에서도 오래도록 건강을 유지하며 살기 위해서는 규칙적인 생활리듬을 유지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항상 <적절한 긴장감>이 필요합니다.

 

마찬가지로 이 세상에서 나그네와 같은 삶을 사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항상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일이 바로 영적긴장감을 유지하는 것입니다. 이 과제는 어느 일정기간의 과제가 아니라 평생의 과제입니다.

본문 13 말씀의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너희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근신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너희에게 가져올 은혜를 온전히 바랄지어다

 

영적긴장감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마음의 허리를 동여야 합니다. 이 말은 긴 의복을 허리띠를 빌어서 졸라매는모습에서 유래한 것입니다. 이스라엘백성이 애굽에서 노예로 살다가 탈출할 당시 제정된 유월절에 담긴 정신입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애굽에 마지막 재앙을 내리면 완강한 바로도 할 수 없이 이스라엘을 놓아주게 될텐데 그 때를 미리 대비하라는 것입니다. 출애굽기 12:11입니다. 너희는 그것을 이렇게 먹을지니 허리에 띠를 띠고 발에 신을 신고 손에 지팡이를 잡고 급히 먹으라 이것이 여호와의 유월절이니라 애굽을 떠날 준비를 하라!는 것입니다.

 

지금 나라가 어렵다고 하지만 이 어려움을 통해 한국 교회와 성도들이 영적긴장감을 계속 유지할 수 있어야 합니다. 간절히 기도하고 참된 소망을 기억하고 사모하며 살아야 합니다. 유럽교회, 미국교회들이 급격히 하나님을 떠난 가장 중요한 이유가 <영적긴장감의 상실>입니다. 삶의 여유로 인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하나님은 늘 공평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어려움을 통해서도 큰 은혜를 주시기 때문입니다.

 

교회와 성도는 소위 안정의 함정을 늘 경계해야 합니다. 안정은 좋은 것이지만 안주가 되고 나태가 되고 타락이 되어서는 않됩니다. 항상 역동적으로 살아 움직여야 합니다. 그리고 더불어 주님 다시 오실때에 / 우리가 주님앞에 갈때에 온전히 받을 하나님의 은혜, 산소망(천국과 영생)을 항상 바라보고 살아야 합니다. 그 무엇과도 바꾸어서는 않됩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1-9, “형제들아 때와 시기에 관하여는 너희에게 쓸 것이 없음은 주의 날이 밤에 도둑 같이 이를 줄을 너희 자신이 자세히 알기 때문이라 그들이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 때에 임신한 여자에게 해산의 고통이 이름과 같이 멸망이 갑자기 그들에게 이르리니 결코 피하지 못하리라 형제들아 너희는 어둠에 있지 아니하매 그 날이 도둑같이 너희에게 임하지 못하리니 너희는 다 빛의 아들이요 낮의 아들이라 우리가 밤이나 어둠에 속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이들과 같이 자지 말고 오직 깨어 정신을 차릴지라 자는 자들은 밤에 자고 취하는 자들은 밤에 취하되 우리는 낮에 속하였으니 정신을 차리고 믿음과 사랑의 호심경을 붙이고 구원의 소망의 투구를 쓰자 하나님이 우리를 세우심은 우리를 노하심에 이르게 하심이 아니요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게 하심이라

 

늘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내가 하나님의 자녀로 영적긴장감을 가져 있는가? 그 무엇보다 하늘의 은혜를 사모하고 있는가? 특별한 모습이 아닙니다. 바로 예배드림을 즐겨하고 / 말씀묵상에 힘쓰고 / 쉬지않고 기도하며 주님과의 교제의 끈을 놓지 않는 모습입니다. 우리 주님의 손과 발이 되어 헌신과 봉사에 힘쓰는 삶의 모습입니다.

 

(다음은)

@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고 늘 거룩한 삶을 살아가는 모습입니다.

 

오늘 본문 14-16입니다. 너희가 순종하는 자식처럼(부모에게 순종하는 아름다운 자녀의 모습과 같이) 이전 알지 못할 때에 좇던 너희 사욕을 본 삼지 말고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자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기록하였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셨느니라

 

구약 레위기 11:45의 인용입니다.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려고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아멘.

 

크리스천의 거룩은 주님과의 관계에서 주어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오스왈드 챔버스, ‘거룩함은 주님이 주신 '무엇'이 아니라 바로 '주님'이 그 사람 안에 거하시는 것이다.’

 

거룩한 삶의 과제를 감당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우리가 받은 구원의 은혜를 늘 기억해야 합니다.

 

미가 6:5, “싯딤에서부터 길갈까지의 일을 기억하라이스라엘의 패역중에도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말라는 말씀입니다.

 

구원의 은혜를 간직한 성도는 방종하지 않습니다. 방탕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구원의 은혜를 받았습니까? 본문 18, 19입니다.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의 유전한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된 것은 은이나 금같이 없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니라 아멘.

그래서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피 값으로 구원받은 성도의 삶은 믿지 않는 세상사람들과 달라야 합니다. 하나님과 접촉하여 사는 사람다와야 합니다. 이것이 성도의 거룩입니다. 저나 성도님들의 말, 태도, 생각이 구분되기를 바랍니다. 선한 영향력을 끼치면서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거룩한 순례자의 삶입니다.

 

(끝으로)

@ 형제사랑의 모습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성도의 이웃을 향한 태도는 마찬가지로 사랑의 태도여야 합니다. 본문 22입니다. 너희가 진리를 순종함으로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마음으로 뜨겁게 피차 사랑하라”, 거짓이 없이라는 말은 헬라어원어로 위선적인 요소를 배제하고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마음으로모든 정성을 다해’, ‘순수한 마음으로라는 뜻이 있습니다. 뜨겁게쉬지말고, 열심히라는 의미입니다. 결국 진실과 순수한 마음으로 열심을 다해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을 거듭난 사람이라고 합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을 말합니까? 여러 가지가 있지만 무엇보다도 사랑하는 존재로 변화된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알지 못하고 받지 못했을 때는 우리는 분명히 서로 미워하고 시기하고 다투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로마서 1:29, “...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하는 자요

 

사랑을 나눈다 해도 지극히 제한적이고 자기중심적 사랑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사랑이신 하나님(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을 만나고 그 사랑을 차고 넘치도록 체험한 다음부터 우리는 이웃을 사랑하는 존재로 새로 태어난 것입니다. 우리를 구원하신 주님의 지상 최대의 명령입니다. ‘The great commendment', "요한복음 13:34-35,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결국, 제한된, 그러나 거룩한 나그네의 삶을 사는 성도가 사는 동안 집중해야 할 일은 그리스도의 사랑을 나누는 일입니다. 우리 공동체에서부터 서로 사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서로 받은 넉넉한 사랑으로 이웃도 사랑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 곳에서 만난 것은 주님의 사랑을 나누기 위함인것을 꼭 기억해야 합니다. 미워하는 일은 마귀의 일입니다. 간혹 다투는 일이 있더라도 성숙한 사랑의 과정이 되어야지 헤어짐의 단계가 되어서는 않됩니다. 함께 사랑하면서 가면 나그네 길이 외롭지 않습니다.(가요 가사 내가 가는 길이 멀고 험해도 사랑하면 가겠네...’)

 

거룩한 나그네의 삶은 3H의 삶입니다. Holy tention(거룩한 긴장감), Holy life(거룩한 삶), Holy love(거룩한 형제사랑)입니다.